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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페이지에 있던 글을 블로그로 옮긴다.

인식이야기

생각주파수
사건발생확률
태어남과 죽음
나는 어디에 있는가?
과거를 바꾸기
존재의 인식
다른 공간을 느끼기
나는 하나인가?

생각주파수

잠을 자기 위해 가만히 누워있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누워있다. 하지만 생각은 그냥 떠오른다. 심지어 어디선가 생각이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도 강하게 든다. 마치 라디오를 켜놓고 신호를 받는 것처럼 분명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닌데도 내 생각처럼 내게 생생하게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고 목소리가 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생각주파수 또는 사고주파수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그가 만들어내는 특정진동에 실려 허공을 떠돈다. 우연히 그의 생각주파수가 나의 생각주파수와 일치했고 나는 허공을 떠돌던 그 사람의 생각을 내 것처럼 무의식 중에 떠올리게 된다. 언어는 무관하다. 사고란 것이 언어를 통해서 인식되기는 하지만 사고자체가 언어를 필요로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더욱 확장해보면 "나"라고 하는 자아도 어쩌면 내 주변의 사물들과 사람들 그리고 사건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생각주파수에 의해 구체화되고 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사건발생확률

옛날 옛적, 어쩌다 책장 좀 넘기던 시절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사건의 발생확률에 대한 글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단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은 물질을 만들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한 과학자가 있다고 하자. 수 년간의 연구 끝에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물질을 개발하게 되었다. 세상은 경악을 금치 못 했다. 하지만, 이 때부터 세계 곳곳에서 같은 물질을 독립적으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글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어떤 사건이 최초 발생하는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발생한 뒤에는 그 만큼의 노력이 없이도 그 사건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보의 공유가 없다는 가정에서 하는 얘기다. 이렇게 사건의 발생 빈도수가 많아질수록 그 사건은 점점 흔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통상적인 외계인의 UFO 기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는 UFO가 지구 기계문명의 미래라도 되는 듯이 생각한다. 사건발생확률에 따르면 그럴 만한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다. 우주 전체를 통털어 지구보다 먼저 기계문명이 발생했고 지구에서는 그 뒤를 따라 비슷한 문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UFO 기술은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외계인의 형태에서도 우리와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

오밤중에 배가 고프니 헛소리가 자꾸 나오는구나.

태어남과 죽음

죽은 자들은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삶이 더 가치 있거나 덜 고통스러운 뭐 그런게 아니고 자신에게 익숙한 것들과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육체의 있고 없음은 증명할 수 없으며 산 자에게는 죽은 자들이 허상이고 죽은 자들에겐 산 자가 허상일 뿐이다. 죽은 자에게 더 큰 능력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며 산 자가 더 나약한 것도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과 죽어 있다는 것은 단지 살아 있는 자들이 경계를 그은 것 뿐이며 죽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상태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물이 끓어 증발하고 식어서 다시 이슬이 맺히듯...

그러고 보면 태어남과 죽음 모두 두려울 뿐이다. 모두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작별일 뿐. -- HuidaeCho

위 글을 쓴 사람이 죽은 사람이라면 (위글은)중요한 정보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인식 불가해한 간극이 있다(적어도 지금까지의 통념으로는) 살아있다는 이유로 죽음마저 삶의 한 아류로 생각해야할지, 그것이 또 어떤 효용을 가져다 줄지 생각해보고 결론짓자. -- 아무개

죽음마저 삶의 한 아류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죽음마저 삶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쓴 글이다. 따라서 효용같은 것은 당연히 없으며 이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오래 하면서 산다면 효용없는 인간이 될 것이다. ;) -- HuidaeCho

태어남과 죽음이 처음과 끝이 있는 하나의 레일이라는 생각, 고리 혹은 나선모양으로 순환하고 있다는 생각 어느 한쪽이 맞고 다른 하나가 그르지는 않다. 두개의 상반된 명제는 정보이기 이전에 희망 or 신념이기 때문이다. 바램이라던가 어떠해야한다는 고정관념은 사물을 왜곡해서 인식하게 한다. 인간은 진실을 왜곡하지 않으면 인식할 수 없다. (>_< 정말이야? 아니라고 해줘 아니라고)

(효용없는 인간에 동참~ 아니 물귀신인가 :)

나는 어디에 있는가?

다음과 같은 시간, 공간(각 축의 세분화에 의해 다차원이 될 수도 있다. 예: 공간 3차원, 시간 1차원 = 공간*시간 4차원)이란 좌표를 생각하자. 각 좌표에 할당된 사건은 이미 결정되어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여기서 사건이란 또 하나의 차원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편의상 상수로 취급해서 각 좌표에서의 사건은 이미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시간   1   2   3   4   5  ...
공간
1
2
3              (2)
4          (1)     (3)
5                      (4)     (6) ...
.                          (5)
.
.

내 개인의 역사가 (1)에서 (6)을 거쳐 미래로 연결될 때 나는 (1)에서 (6)사이의 모든 좌표에 존재한다. 즉, 모든 시간과 공간, 사건은 어떤 지배할 수 없는 존재에 의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현재"라고 생각하는 인식 또는 의지가 연속된 좌표상을 오가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나의 "현재"라는 인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나는 과거로도 미래로도(사건의 불확실성을 배제했을 때 미래도 가능하다.) 갈 수 있다. 단, 인식의 여행일뿐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사건은 이미 정해져 있다. 따라서 과거로 인식이 옮겨졌을 뿐 사건은 다시 반복된다. 인식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고 결국은 역사의 마지막에 있는 나에게로 수렴된다.

예를 들어, 나의 인식이 어제로 옮겨지면 나는 어제의 생각을 가지고 동일한 사건을 거쳐 오늘로 돌아온다. 그러면 어제의 미래인 오늘이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하루를 산 것과 다름없다. 인식하지 못한채...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실제로 내일의 내가 아닐까? 또는 죽기 직전, 과거를 회상하며 되돌아온 나의 인식이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개념을 확장하면 시간도 겹칠 수 있겠다. 시간이 공간보다 더 특별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시간   1   2   3   4   5  ...
공간
1
2
3              (2)
4          (1)     (3) (8) (7)
5                  (9) (4)     (6)
.                 (10)...  (5)
.
.

인식도 모든시간에 무한히 존재하는 건가요? 다른 시간으로 이동하지않고 그 시간의 공간을 바라볼 수는 있을까요? 희대님은 해보셨나요??

인식의 정의를 자신이 실재한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할 때 인식은 단 하나여야 혼동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당장 여러 좌표의 사건을 실재한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니까요.

과거를 바꾸기

"나비효과" 재밌군. 내가 감독이라면 마지막을 다르게 장식하고 싶다.

주인공은 실제로 미쳤고 일기를 쓴 적도 없다. 현실은 단 하나 지금 미치게 만든 사건들의 연속뿐이고 여자를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과거를 바꿔야한다는 생각으로 미쳐버렸다. 상상 속에서 과거바꾸기의 수단으로 일기장을 발명해내고 쓰지도 않았던 일기를 읽으면서 "이렇게 될까? 저렇게 될까?" 현실로 착각한다. 물론 스스로 그런 일들이 모두 일어난 것이라 믿고 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현실에 와있고 일기장은 애초에 없었다는 의사선생의 말에 영화를 봐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며 증상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리고 얼마 후 컴컴한 사무실에서 쫓기며 영화를 본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과거로 돌아가려 발버둥친다. 장면은 실제 과거로 돌아가고 여자애한테 무슨 말을 한다. 다시 컴컴한 사무실의 화면이 비춰지며 미쳐버린 얼굴로 똑같은 말을 되뇌이며 온 몸이 묶여 어디론가 실려간다. 엔딩크레딧...

관객들은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이 겹치는 것을 보고 또 한번의 과거바꾸기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원본에 나타나는 말도 안 되는 과거바꾸기가 현실감을 저하시키기에 이런 생각을 해봤다. 물론 결말이 위와 같이 되어도 초자연현상이 아닌 한 미친 인간의 상상뿐이라는 실없는 영화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불행한 결말이 더 즐겁다.

코피 한 번으로 과거를 바꿀 수 있다... 즐거운 상상이다. 인간의 의식만으로도 과거를 바꿀 수 있을까? 사건을 제외한 동일한 우주가 여러 개 존재한다는 평행우주설을 이용한다면 다른 우주의 나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할 것 같다. 어쩌면 매 순간의 나는 이미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온 나의 의식 또는 육체일지도 모른다. 다만 시간역행을 통해 미래의 기억이 사라진 것뿐이다.

존재의 인식

상상해 보라. 아무런 자극 없이 바람 한점 없는 닫힌 방에서 힘을 빼고 누워있는 나를... 팔이 있음을 느끼는가? 다리가 달려 있음을 느끼는가? 가끔 배 속의 창자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다. 만약 내가 팔을 이루고 있는 살점이 내 뼈에 달라 붙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내 팔은 자극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다. 나는 A라는 사람을 알고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그 사람은 내 곁에 없으며 어떠한 연락을 취하고 있지도 않다. 나는 A라는 사람이 현재 존재하고 있음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지금 전화를 해서 통화를 하면 되잖아". 좋다. 전화를 한다. "만나서 확인하면 되잖아". 역시 좋다. 만난다. 하지만 내가 전화를 하거나 만나는 순간 이미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상황은 종료가 된다. 오감으로 느끼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A의 존재를 확신할 수 없다. 오감으로 느끼는 그 순간 존재하지 않던 A가 나의 인식체계 속에 자리 잡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가본 곳일지라도 지금 내가 거기 없으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인식하는 것은 언제나 바로 지금 내 오감의 범위에 들어오는 환경 뿐이다.

게임의 경우를 생각하면 쉽다. 슈팅 게임의 경우 주인공 비행기는 화면의 모든 구석을 돌아 다닐 수 있다. 하지만, 게임 프로그래머는 주인공 비행기를 화면의 모든 곳에 미리 그려 두진 않았다. 한번 있던 곳도 지나가 버리면 어떠한 흔적도 없다.

그렇다면, 다른 이에 의해 일관적인 존재가 확인 된 어떤 장소에 내가 가게 된다면, 그 곳은 역시 내가 미리 알고 있던 그 장소와 다름없다. 이것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까? 타인에게서 얻은 정보가 내 머리 속에 타인의 존재인정과 함께 정보화되어 저장된다. 따라서, 내가 가진 그 곳에 관해 정리된 생각은 내가 그 곳을 느끼는 데 영향을 미치며, 그 곳은 실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나에게 느껴진다.


책받침으로 연필을 가리고 연필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연필을 가리는 순간 연필이 어떻게 되는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책받침을 치우는 순간 다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공간을 느끼기

"가"라는 도시에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이 있고 "나"라는 도시에 부모님이 계신 집이 있다고 하자. 지금 당신은 "가" 도시의 집에 있다. 눈을 감고 바르게 누운 후 모든 근육의 긴장을 풀고 외부자극으로부터 무감각해진다. 이제부터 당신이 누운 공간이 "나" 도시의 부모님 집이라고 강하게 상상하자. 지금 당장이라도 눈을 뜨면 "나" 집의 방에 누운 자신을 발견할 정도로 착각하자. "나" 방의 크기를 상상하며 그 공간감을 상기시켜 느껴보자. "나" 방 주변에 놓인 사물들을 하나 둘씩 제자리에 놓아가며 자신의 느낌을 "나" 방으로 몰입시키자. 아버지를 상상해 넣고 어머니를 상상해 넣고 무엇을 하시는지 관찰하자. 혹시 아는가 실제 "나" 방의 상황을 느끼고 있을지...

나는 하나인가?

라는 것은 하나의 독립된 개체인가? 나를 이루는 장기, 뼈, 핏줄, 세포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는데 과연 나는 독립된 개체가 될 수 있는가? 내가 생각하는 것은 과연 내가 생각해 내는 것인가? 핏줄이 생각하고 뼈가 생각한 것들을 마치 내가 생각한 것 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를 구성하는 핏줄과 뼈가 생각했으므로 결국 내 생각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생각한 것과 네가 생각한 것과 그들이 생각한 것이 모이면 지구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 만약 내가 핏줄이, 뼈가 생각한 것을 무시하고 내가 생각한 것이라고 한다면 과연 내가 생각한 것은 내 것이 될 수 있는가? 이처럼 사고는 점점 커져만 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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