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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kaki:130

아버지는 외할머니를 싫어하셨다. 외할머니도 아버지를 못 마땅해 하셨다.

어머니는 두 오빠와 네 명의 여동생 사이에서 양보만을 미덕으로 살아왔다. 고졸로 학업을 마치고 네 동생들 모두 대학에 보냈다. 오빠들은 당연히... 그렇게 똑똑하신 양반들 사이에서 손해를 봐도 손해를 보는지 모르고, 무시를 당해도 무시를 당하는지 모르면서 무감각하게 살아왔다. 동생들 모두 돈 잘 버는 양반들 만나 시집 잘 갔다는 소리를 들을 때 어머니는 고졸에 험한 고생만 하며 살아온 참 초라해 보이는 총각과 결혼했다. 사랑을 했는지 뭐를 했는지는 모르겠다만은...

아버지는 두 명의 형을 두고 태어났다.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는 철도공무원으로 평생을 바치셨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돌아가시고 어찌 된 일인지 큰 형은 장가도 못 가고 죽고, 작은 형 마저 딸 하나 두고 죽었다. 그 딸은 작은 형수를 따라 살 길 찾아 떠났다. 아버지는 산나물을 싫어하셨다. 홀로 계신 아버지의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산으로 들로 나물을 뜯으러 다니며 끼니를 해결해야 했으며, 할머니가 앓아 누웠을 때는 아버지 혼자 나물을 뜯으러 산을 뒤져야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산나물을 싫어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산나물을 좋아하셨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쥐기 전 아버지는 세상에 혼자 남았으며 졸업 후 전국을 떠돌며 당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 굳게 믿었던 공무원이 되기에 이르렀다. 누구의 소개로 홀로 어머니를 찾아가 결혼하게 된다. 사랑을 했는지 뭐를 했는지는 모르겠다만은...

비교된다. 그래 비교된다. 다른 사위들과는 확연히 비교된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초라한 맏사위가 너무도 한심스럽다. 그런 외할머니에게서 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와 같은 마음은 느끼지 못 했을 것이다. 그리울 만도 한데 그래서 더욱 기댈만도 한데... 그런 정은 못 느꼈을 수도 있겠다.

외할아버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왜 그토록 많은 눈물을 보인 것일까? 내가 세상에 눈 뜨고 나와 처음으로 보는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의아했다.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꿈, 그래 누구나 꿈을 꾸면 뭐든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아버지도 그랬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지지리도 아픈 고통에 잠이 든 아버지는 이순(耳順)을 서너해 앞 둔 연세.

"엄마, 엄마..."

너무 놀랐다. 아니 차라리 눈물을 흘렸다. 그 고통, 그것은 "엄마"를 찾게 만들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건데 아버지는 외할머니 때문에 그토록 눈물을 흘린 것일까 아니면 외할머니에 투영된 엄마가 뼈저리게 그리워 때마침 눈물을 흘린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다른 이들이 너무 슬프게 우니까 그냥 감정에 북받혀 그랬던 걸까? 설마 그 양반이 그랬을리는 없을 것이고...

철없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천원을 달라면 그거 갖고 뭐하냐며 만원을 주시는 그냥 지갑같은 존재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유별난 그 성격에 무감각해져 나를 감싸주기도 했으며, 둘이서 아버지 흉을 보기도 했다. 아버지는 외로운 존재라고 느끼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뒤늦게나마 그 외로움이 뭔지 알았을 때 나도 닮은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섬찟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엄마는 나의 엄마처럼 당신을 감싸주던 하나 뿐인 따뜻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잠에서 깨면 또 아픔입니다. 그냥 엄마랑 함께 꿈에서 사실래요?

뼈저린 고통, 혼자서는 볼일조차 볼 수 없는 구멍 뚫린 배. 머지 않은 시간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미안함을 눈물로 대신하며 "그냥 사진이나 찍어놓을까?" 하시는 불안한 예감. 삶의 시작과 과정과 끝나감이 이토록 이가 맞물릴 수가 있을까 싶다. 입버릇처럼 "엄마 옆에 누워야지..." 그 꿈을 꾸면서 앙상한 가슴에서 뜨거운 피는 식어갔다.

어쩌면 아버지는 외할머니의 관을 사춘기 시절 엄마의 관으로 착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엄마
조희대 2003-11-18 20:00:14

기억은 희미해집니다. 그래서 붙잡을 수 있는 것들만이라도 사진처럼 찍어두고 싶습니다. 술만 드시면 "네가 크면 내 다 얘기해줄께" 하시던 당신의 그 "얘기"가 도대체 무엇인지 감조차 못 잡고 있으니 조각만이라도 붙여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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