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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재료

얼마 전까지만해도 영원불멸한 영혼이란 것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육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고를 하고 행동을 유발한다. 육체가 더 이상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 영혼은 그 몸을 떠나서 새로운 몸을 찾을 때까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살게 된다. 새로운 육체를 찾게 되면 다시 이 세계로 온다. 이것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다시 죽어서 이 세계로 오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만이 또는 동물만이 사고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편협한 생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최근에는 식물도 고통을 느끼고 생각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생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어떠할까? 샤머니즘 같은 종교적 의식은 제쳐두고 무생물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가 나의 결론이다. 이 결론과 함께 앞서 얘기했던 이 세계, 저 세계에 관한 나의 생각도 결국 접게 되었다.

물질을 이루는 어떤 최소 단위의 무언가가 있다고 하자(물론 그런 것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 최소단위의 입자는 너무도 구조가 단순해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있다 없다 뿐이다. 이것을 각각 1과 0이라고 하자. 이 최소입자가 결합과 결합을 거듭해 어떤 물체를 이루고 있다면 입자의 수는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이다. 이 때 각각의 최소입자들은 미세하나마 서로 다른 환경에 노출되고 있으며 이것이 입자의 상태에 영향을 미쳐 입자가 이에 반응하게 된다. 0과 1뿐인 반응이 무수히 많은 입자에 무작위에 가깝게 일어남으로써 입자의 덩어리인 물체는 결론적으로 2^n만큼의 상태를 표현하게 된다. 여기서 n은 입자의 개수이다. 여기서 상태라고 말하고 있지만 상태라는 것은 기억과도 같은 말이 될 수 있고 반응이라는 말은 생각과도 같은 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이란 것은 최소입자가 만들어 내는 단순한 반응의 무수히 많은 조합에 의해 생각을 하게 된다. 동물과 식물도 마찬가지의 원리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사고의 수준을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최소입자들의 결합이 이루어지는 패턴에 달려 있다. 그 패턴이 인간을 이루는 구조라면 인간의 사고를 만들고 개를 이루는 구조라면 개의 사고를 만들어 낸다. 꽃을 이루는 구조라면 당연히 꽃의 반응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무생물인 돌도 흙도 인간은 이해할 수 없지만 어떻게든 반응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의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물건에서조차도 이 최소입자의 결합이 유효할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사고가 존재할 것이다. 이 물건을 만들기 위해 자연상태의 재료들이 분해되고 재결합되었지만 바로 이 재결합에 의해 서로 다른 자연물에서 분리되어진 입자들이 만나 전혀 다른 반응을 만들어 내게 된다. 예를 들어 종이를 생각해 보자. 종이의 재료는 나무가 기본이다. 나무에서 사고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던 입자들이 떨어져 나와 분해되어 다른 물질과 섞여 종이라는 형태로 재구성된다. 입자들은 나무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그 결합패턴이 더 이상 나무가 아니므로 나무로서의 반응은 만들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종이라고 부르는 패턴으로 결합되어 종이로서의 반응을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 또는 사고와 자아, 영혼등을 바라보는 입장이 많이 바뀌게 된다. 생각이란 것은 결국 입자들의 하찮기 그지 없는 0과 1의 반응에서 복잡한 구조로 얽히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입자들의 결합을 이루고 있던 구조가 분해되면 기존의 사고 또한 다른 형태로 분해되어 서서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인간이 죽게 되면 몸이 점점 썩게 되고 결국에는 인간의 사고 또는 영혼은 분해되어 육체의 썩은 잔해 속에 다른 모습으로 남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영혼을 위한 또 다른 세계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더 나아가 시체를 섭취한 미생물이나 식물이 있다면 이들에게 인간의 사고를 구성하고 있던 입자들이 결합되어 인간으로서가 아닌 또 다른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죽은 직후에도 사고를 하고 있는가? 죽음이란 것은 입자들의 결합에 문제가 생겨서 기계적인 작동을 멈춘 상태를 뜻한다. 기계적인 작동에는 뇌의 활동도 포함되어 있으며 인간을 인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게 하던 뇌가 작동을 멈춤으로써 몸을 움직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죽음의 원인이 되는 몸의 부위는 살아 있을 때와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고 이것은 다른 부위를 구성하는 입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이 죽음이다. 그리고 몸은 점점 분해되면서 사고 또는 자아 또한 서서히 다른 형태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인간의 이런 반응, 동물의 반응, 식물의 반응, 무생물의 반응, 인위적인 물체의 반응 이런 무수히 많은 반응들이 다시 모이고 모여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반응이 되고 지구의 생각이 된다. 지구의 반응과 달의 반응과 다른 행성들의 반응이 모여서 태양계의 반응이 되고 이렇게 반응은 점점 모여서 거대한 사고의 덩어리를 구성하게 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결합의 구조만 동일하다면 동일한 사고를 만드는 것인가? 그렇다. 쉬운 예로 과학자들이 인간을 이루는 동일한 재료를 사용해서 인간과 동일한 구조로 인위적인 인간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그 인간은 인간인 것이다. 자아도 있고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고, 인식, 자아라는 것이 어디서 떠돌다가 육체로 스며드는 것이 아닌 물질의 결합패턴으로 인한 반응의 복잡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조합해 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식이란 것이 단순히 물질의 조합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면 귀신이나 유령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유령이 된 사람이 살았던 집을 이루고 있는 입자들이 그 사람의 생활에 대해 학습을 하게 되었고 하나의 상태로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집을 이루는 물질과 유령현상을 목격하는 사람을 이루는 물질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그 기억이 비로소 유령현상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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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Mar 28 21:24:1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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