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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드라마

대한민국 드라마는 대략 두 가지뿐이다.

  1. 젊은 층: 연인 집안끼리의 빈부갈등

    남자나 여자 둘 중 한 쪽 집안은 반드시 잘 살고, 나머지 한 쪽은 반드시 비교될 정도로 평범하거나 과장될 정도로 못 산다. 부유한 쪽에는 역시 부유한 또 다른 이성이 이기심을 불태우고, 이에 굴하지 않고 우리의 젊은 인기텔렌트 한 쌍은 많은 게런티를 받고 해피엔딩을 맺는다. 또는 가뭄에 콩 나듯 한 쪽을 죽이고서 끝난다.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적시고(?), 부에 대한 헛바람만 쳐집어 넣는 이따위 드라마의 결론은 한가지다. 스타탄생 또는 스타돈벌이. 드라마 마친 후 얼마 안 있어 유들유들한 꽃미남이 기름진 웃음을 입에 머금고 나와 마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 착각하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토해내는 토크쇼나 연예뉴스, 우리는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2. 중년 층: 바람 피우는 이야기

    이제 중년이 되면 좀 사는 집안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어떤 교훈을 담으려는 듯 돈은 많지만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다. 뭐가 있겠는가? 불륜 밖에 없다. 결말은 다시 합치는 건 잘 못 봤다.

    어쨌든 많은 아줌마들은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 한 세상을 드라마에서 대리만족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저씨들은? 솔직히 많이 보는 지 모르겠다.

과연 이런 드라마에서 어떤 삶의 모습을 읽어 낼 수 있으며,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단 말인가. 조명 불빛을 눈동자에 가득 담고 어제 외운 대본을 읊어대며 진실한 척, 가난한 척 연기하는 모습은 너무도 보기 힘들다. 마치 국회의원 양반 수재민 돕기에서 짐 나르는 모습 같단 말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TV 드라마는 볼 것이 전혀 없을 것이다. 그냥 내 생각이 이렇단 말이다.

그러면 내가 생각하는 볼 만한 드라마는 뭘까? 아마도 가난한 사람들 얘기만 좋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지 모른다. 일부는 그렇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있을 법한 얘기를 보고 싶단 말이다. 재미만으로 머리에 남는 것이 아니라 개연성(蓋然性, probability)과 삶에 대한 진지한 이해로서 가슴에 남는 허구를 보고 싶은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제 드라마는 죽었다. 스타시스템의 톱니일 뿐이다. 일일연속극 또한 별로 다를 게 없다. 한심하다. 아침드라마나 저녁드라마를 즐겨 보는 아줌마들의 생각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불안할 뿐이다. 드라마 속의 남편이, 남자들이 대본대로 행동하는 것을 자신의 남편에게 바라며 실망할 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은 말 할 것도 없다. 사랑은 아름다워야 하고 상대방은 자신의 돈 쓰는 능력을 보여줘야만 하는 허구같은 현실이 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왜 드라마라는 것이 현실을 왜곡시키고 있을 법하지 않은 얘기들로 사람들의 눈을 흐리게 하고 있는가? 식상하지도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단편드라마를 좋아한다. 귀차니즘이자 게을리스트이기에 아슬아슬한 장면에서 다음을 기약한다고 하면 숨 넘어가서 오래 못 산다. TV 문학관, 베스트셀러극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은 둘 다 없어졌다. 베스트극장이라고 있지만 예전 만큼은 볼 만하지 않다. 기억에 남는 작품을 몇가지만 생각해 내면 다음과 같다.

TV 문학관 "사평역"

임철우의 소설곽재구의 시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詩 또는 그림이었다. 겨울 늦은 밤 장터를 지키던 장수들이 집으로 향하는 사평역에서 눈에 막혀 늦은 기차를 기다리며 이런 저런 얘기를 풀어 놓는 단막극이다. 자막이 올라가며 나래이터가 읊은 시는 곽재구의 "沙平驛에서"이다.

TV 문학관 "길위의 날들"

한 50대 장기수가 휴가를 나온다. 먼 눈길을 해쳐 늙을 대로 늙은 어머니의 허름한 집을 찾아 절을 한다. 손자와 함께 아들을 기다리며 늙은 어머니는 아들이 영 돌아 온 줄 알고 기뻐하며 장작을 태워 굴뚝에 불을 지핀다. 아들은 아버지를 어색해 하는지 부끄러워 하는지 반가운 기색이 없다. 떠나야 하는 새벽에 아들은 어머니 힘드실까봐 몰래 눈길을 밟는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지나간 발자국을 한참을 따라가 아버지를 바라 본다. 눈길에 쓰러지며 허약해진 몸을 이끌고 또 다시 눈이 없는 사각의 그곳으로 끌리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옮기며 자막은 올라간다.

지금 글을 쓰며 그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그 파랗던 눈 덮인 새벽길... 마치 다시는 못 볼 사람을 보내는 것 같은 너무도 차가운 얼어붙은 길처럼 느껴진다.

"휴가를 얻은 50대 장기수의 귀향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그리움을 그린 작품 세계로서 최고권위의 이탈리아상 대상수상작"

베스트셀러극장 "소나기"

다들 알테니 쓰진 않는다. 너무도 소설의 느낌을 잘 살려 묘사를 한 것 같다.

공교롭게도 "사평역"과 "길위의 날들"은 모두 사평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사평역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역이다. 전남 화순군 남면 사평리에는 기차역이 없다. 두 드라마 모두 전남 나주시 남평읍의 남평역에서 촬영했다.

언제 쯤이면 "??? 동화" 같은 류의 시덥잖은 사랑얘기가 아닌 정말 가슴을 녹여주는 뜨거운 드라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Huidae Cho. 2002-09-08 19:02:0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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